본문 바로가기
김미경 유튜브 대학/Book Action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by 타마타마북 2020. 1. 14.

 

 

 

*요조, 임경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북드라마 시즌 5#1 북액션

교환일기를 함께 하고 싶은 친구에게 A3반장 분량의 일기를 써보세요.

안녕, 내 오랜 친구.

부산에 잘 도착해서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니 다행이다.

비행기 탈 때마다 늘 연착된다고 신기해하더니 이번엔 제시간에 도착했나 보네.

난 널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고작 이틀 묵었을 뿐인데도 사라져버린 네 흔적에 허전해져서

잠시 멍하니 여기저기 휘 둘러보게 되더라.

든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표시 난다는 옛 어른들 말씀.

옛말은 정말 틀린 게 없어, 그치?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친구야.

또 늘 그랬듯이 잘 먹고 돌아다니고 고민하면서 난 혼자 열심히 살아가게 될 테니까.

그러다 화났던 일, 속상한 일이 생기면 또 금방 너한테 전화해서 분노의 폭탄을 마구 터트리고 말야.

그럴 땐 왜 엄마나 언니, 여동생보다 너한테 먼저 전화하게 되는지 몰라.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지만 오래 봐왔다는 그 세월의 무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뭘 말해도 그냥 받아주고 내뱉은 내 말은 그냥 그대로 묻혀 버릴 거라는 느낌.

내가 뱉어낸 말이 비록 독일지라도 칼날처럼 다시 번득이지 않고 허공으로 휘날리지 않고

어딘가 조용히 묻혀서 사라질 거라는 그런 믿음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난 네게 그리고 넌 내게 아무한테도 쉽게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건 아닐까?

넌 어떻게 생각해?

 

그건 그렇고 네가 서울에 도착했던 첫날 기억하지? 우리 파주에 갔었잖아.

둘 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기도 해서 서울 오면 어디 갈까 의논하다 단번에 결정해버린 곳이

사람은 드물고 책으로 가득한 파주 지혜의 숲이었으니까.

예상대로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사진도 찍고 책도 실컷 보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었지.

파주에 도착하기까지는 길치 둘의 험난한 모험이 있었지만.....

 

그래도 너보다는 서울생활이 긴 내가 미리미리 차편을 알아놨어야 하는데

내가 평소에도 극심한 길치라는 걸 잘 아는 넌 역시나 이번에도 가는 방법을 찾아봤다며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마중 나간 날 안심시켰었지.

난 늘 그렇듯 널 따라가기만 하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첫 번째 버스를 갈아타는 곳에서부터 우리는 헤매기 시작했고

겨우 찾아간 버스 정류장에서는 갈아탈 버스도 오지 않았지.

그렇게 한 이십 분 정도를 둘이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우리가 타려고 하는 버스는 출퇴근 시간에만 운행한다는 걸 알게 됐고

결국은 지하철을 탄 뒤 버스로 또 갈아타고 어렵게 어렵게 파주에 도착했잖아.

스마트폰만 있으면 못 찾아가는 곳이 없는 Z세대가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얘기겠지만

우리 같은 집순이 아줌마들한테는 역시나 낯선 길은 너무 힘든 것 같아.

꼼꼼하게 미리 못 챙긴 게으른 나지만 너그럽게 봐주길 바란다, 친구.

그래도 왠지 창피한 듯 사람들에게 못 물어보는 너 대신

내가 버스 탈 때마다 뻔뻔하게 기사님께 이거 ~가는 거 맞아요? 하면서 물어봤으니까 말야.

아무리 스마트한 시대라지만 모르면 물어봐야지 뭐. 

 

아, 맞다 그리고 너 그날 지갑도 잃어버릴 뻔했었지?

지혜의 숲을 나와 조용한 카페에서 차도 한 잔 마신 뒤

기왕에 파주 온 김에 헤이리 마을도 가자고 하면서 버스를 타려는 순간, 네가 지갑이 없다고 그랬었잖아.

처음엔 팔짱 끼고 잘 찾아봐, 하면서 여유 부리던 나도,

진짜 잃어버린 것 같다는 네 말에 우리가 잠시 느꼈던 평화도 안녕.

지갑에 든 얼마 안 되는 돈보다 비행기 탈 때 필요한 주민등록증 때문에 다급해진 우리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 넌 지혜의 숲으로 난 카페로 뛰어갔었지.

우리가 차를 마셨던 카페 테이블에 그대로 놓여있던 지갑을 보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네가 서울에 온 첫날부터 우리 참 가슴 벌렁거리는 일들로 바빴구나.

그래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추억이 되겠지?

얼마 전에 읽은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그러더라.

혼자 하는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고 말야.

그럼 우리는 훗날 끄집어내 공유할 수 있는 3일분의 멋진 추억을 만든 거네.

좋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은 치맥으로 거하게 보내자며 준비해 놓고는

치킨도 맥주도 반도 못 먹고 어여 씻고 자자며 방바닥 훔치던 우리.

그렇게 또 한 살 더 먹은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똑같은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겠지?

가족에게도 쉽게 못 하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주고받고

낯선 여행길에서는 마냥 헤매고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책이 쌓인 곳으로 찾아가고

한 해를 마감하는 날도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도 다른 날과 다를 거 없다며

똑같이 잠들고 일어나는 그런 시간들 말야.

 

참, 네가 부산으로 돌아가기 전날 우리가 약속한 거 잊으면 안 돼!

나중에 우리 정말 혼자 살게 되는 날이 오면 같이 살기로 한 거 말야.

나 은근히 기억력 좋은 거 알지?

너도 그렇잖아, 그러니까 우리 서로 약속 꼭 지키는 거다!

 

그럼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그 날까지도

스스럼없는 친구로 남아있길 기대하며.

너를 보내고 조금은 센티멘탈해진 너의 오랜 벗으로부터.

 

 

 

 

 

 

 

 

 

 

 

 

 

 

 

 

 

 

 

 

 

'김미경 유튜브 대학 > Book A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0) 2020.02.19
영어는 3단어로  (0) 2020.02.17
리더의 용기  (0) 2020.02.09
배움의 발견  (0) 2020.01.30
테드, 미래를 보는 눈  (0) 2020.01.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