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Ⅰ
시오노 나나미
이경덕 옮김 살림출판사
똑같은 이야기인데도 아주 재미있고 감칠맛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시오노 나나미도 분명 '꾼'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그 길고 긴 로마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꾼'이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특히 한니발과 스키피오 장군의 전쟁 이야기('그리스인 이야기'에서 '포위 괴멸 작전'이라고 부르고 있네)를
읽을 때는 알바를 마친 뒤 피곤해하면서도 잠을 설쳐가며 미친 듯 신나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접어들면서 너무나 긴 분량,
그리고 마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사랑에 빠진 듯한 그녀의 카이사르 칭찬 일색에
난 청개구리처럼 조금씩 흥미를 잃었었다.
아무튼 그래도 그 오랜 이야기를 써 내려간 그녀의 '꾼'으로서의 필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나 전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의 흥미진진함은 올만에 읽은 '그리스인 이야기'에서도 여전했다.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 느낀 건데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은 여전히 재미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마라톤전투'가 기원전 490년 여름에 벌어졌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한 달과 날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를 기술한 유일한 사람인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정확한 날짜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인데, 근현대 연구자들은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의 어느 날로 추정한다. (192 P)
늘 결단이 늦고 행동을 옮기는 데 뒤처지는 스파르타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데 활용하려고 한 것이다. (353 P)
특히나 책 읽는 내내 나를 웃게 만든 건 스파르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거의 이 결단이 늦고 행동이 굼뜨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스파르타인은 그냥 아테네인과 비교해 설명되는 일명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하는
강인한 마초 같은 전사 이미지 그런 것이었다.
근데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으니 물론 '스파르타식 교육'의 그 강인한 전사 이미지는 맞는데
굼뜨고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기만 한, 인간으로서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이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직접 경험하고 느낀 뒤에 판단할 수 없는 먼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에 관해서는 더욱 말이다.
역사는 살아남은, 강한 승자들에 의해 남겨진 기록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남긴 건 정말 객관적이고 사실만을 적은 기록인 걸까.
인간은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을 하는 동물인데 말이다.
그냥 스파르타인을 묘사하는 표현이 자꾸 반복될 때마다 웃으며 읽다가
문득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 카이사르에 대한 칭찬 일색에 흥미를 잃게 된 것도
이런 느낌 때문이었나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꾼'이라고 느꼈던 그녀의 재밌는 필력이 어쩌면 또 다른 폐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그녀가 독학으로 쌓아 풀어내는 역사 썰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고
그녀가 묘사하는, 사람들의 우여곡절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 속에서 많은 인생 공부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역사 이야기는 늘 지루하지 않고 아련한 감동을 준다.
이처림 시대의 획을 긋는 문화와 문명은 다른 집단과 접촉해 받는 자극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자국 내의 온실재배로는 다른 민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획기적인 문화와 문명을 길러낼 수 없다. (162 P)
첫째, 인간은 늘 희망적인 관측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훗날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라면 그가 누구든 현실의 모든 면을 볼 수 없다. 많은 사람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못한다. (209 P)
남자 중의 남자라는 느낌을 주는 레오니다스가 거느린 스파르타 병사 300명의 장렬한 죽음이 그 무엇보다
스파르타 남자들의 자긍심을 일깨웠을 것이다. 물론 다른 도시국가의 그리스인들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화였다. 2,500년이 지난 현대에도 스파르타라고 하면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병사'가
떠오를 정도다. 이를 주제로 해서 만화나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300'이라고 하면 2,500년 후에도
통용된다는 것이 놀랍다. 물론 영화에서 레오니다스가 좀 젊게 나왔다는 점이 눈에 띄기는 한다.
그러나 그 당시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두 달을 견뎌주기를 기대하며 보낸 그들은 일주일 만에
전멸하고 말았다. 군사 관점에서 보면 '패배'일 뿐이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생각'이라는 정신적 행동을 토론하기 좋아하는 아테네인의 것이라고 여긴 스파르타인이 이번에는
'생각'을 했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와 같은 적으로부터 홀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다른 도시국가,
특히 그중에서 아테네와 공동전선을 이루지 않으면 스파르타의 존립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357 P)
40세가 된 페르시아 왕을 고뇌의 밑바닥으로 빠뜨린 것은 분노가 아니라 더 질 나쁜 감정이었던 듯하다.
오리엔트 귀공자를 습격한 이 인격 파탄은 플라타이아이나 미칼레 전투 결과 때문이 아니라
이미 살라미스 해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그를 조절해왔던 자기 제어가 붕괴되었다.
아들의 애처에게 손을 댔고, 이 사실을 알고 미칠 듯이 화가 난 왕비가 그 여인의 사지를 절단하는 만행이
발생하면서 급기야 왕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었고,
더욱 무분별한 행동을 일삼을 뿐이었다.
그는 플라타이아이전투의 패배를 알고 비로소 사르디스를 떠나 수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사르디스부터 수사까지 이어진 페르시아 유일의 쾌적한 도로를 흔들리는 가마를 타고 가면서
40세에 인격이 파탄 난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와 그리스 양쪽 장군들 가운데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크세르크세스였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도 14년 동안 페르시아제국의 왕으로서 살았다.
'왕 중의 왕'이라고 불렸지만 그 14년은 그리스에 완패한 사실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시간이었다.
광대한 제국의 각지에서 일상적인 행사처럼 일어나는 반란으로 골머리를 썩이던 그가 유일하게
편안한 기분을 누린 기분 전환의 시간이 건축 기사나 장식 직공과 함께 도면을 앞에 두고 있던
때였다는 점은 너무 슬프다. 아버지 다리우스가 착수했지만 완성에는 이르지 못한 일,
수사나 페르세폴리스가 당시 사람들을 경탄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바뀐 것은
크세르크세스가 모든 정신을 거기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락한 죽음조차 맞이하지 못했다.
54세가 되던 해에 왕위를 노린 가신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사후 왕위 계승도 순조롭지 못했다. 이 가신과 왕의 장남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그로 인한 반란은 1년 뒤에야 수습되었으며, 그 와중에 가신과 장남 모두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에서 돌아온 뒤 통치의 기운을 잃은 오리엔트 귀공자의 여생이었다. (414 P)
그런데 '안전보장'이란 무엇일까.
역사의 흐름에 맡겼더니 그 결과로 100년 동안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100년 동안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페르시아전쟁 종료 직후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사태를 상정해 실행에 옮긴 많은 대책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에 그 결과로
100년 동안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뜻일까. 후세의 눈으로 역사를 본다면 전자다.
동일한 역사라도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후자로 바뀐다.
전자라면 애초에 흘러가는 대로 진행되는 것이 역사이므로 역사를 이렇게 저렇게 해보려는
사람들의 노력 전체가 무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 보통 사람 이상으로 부지런히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지도자들의 경우 보통 사람 이상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며,
게다가 그들이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은 지위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기 일쑤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안전'이 오랫동안 '보장'된 상태를 나타내는 '평화'를
'피스(peace)'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영어로 '피스'라고 하면 그렇게만 말해도
실현될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 '피스'의 어원인 라틴어 '팍스(pax)'는 입으로 말할 때
기분부터 달라진다. '팍스로마나'라고 불릴 정도로 그 말을 만들어내고 개념을 창조한 로마인은
'평화'를 '오랜 시간에 걸친 안전보장의 연속'이라고 인식했고, 엄격하고 냉철한 인간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권력자나 보통 사람을 포함해서 당사자 모두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이 바보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설사 이런 종류의 노력이 후세에 보면 쓸모없게 끝났다고 해도 어리석은 행위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뿐 아니라 예상 밖의 사태까지 고려하며 대책을 궁리해냈기에 비록 100년이라지만
그리스인은 '평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 군대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지위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박한 억측'에 불과하다.
역사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419 P)
살라미스해전 이후 테미스토클레스가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것은 그에게 자기 제어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제어'는 '지속하려는 의지'와 안팎으로 짝을 이루는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다. (429 P)
그러나 선견지명은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재능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단지 현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통해 상상하려고 한다.
(433 P)
인간이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한편으로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생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성가신 생물인 인간에게 이성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철학'이다.
반대로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일괄해서 그 모든 것을 써가는 것이 '역사'다.
이 두 가지를 그리스인이 창조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509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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