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Ⅱ
시오노 나나미
이경덕 옮김 살림출판사 펴냄
'그리스인 이야기 1'을 읽고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고 했는데
2권에서 그녀는 전쟁과 역사의 기록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인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면 페르시아전쟁, 펠로폰네소스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스에 의한 동방 원정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전체 3권으로 이루어진
'그리스인 이야기' 1권에서 페르시아전쟁, 2권에서 펠로폰네소스전쟁, 그리고 마지막 권에서 동방 원정을 다루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토록 전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쟁을 서술하는 것 자체에 흥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갔는지에 따라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운명조차
바꾸어놓는 인간 세계의 현상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209 P)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역사는 이집트와 오리엔트에서도 예전부터 존재했다.
투키디데스의 위대함은 거기에 '왜'를 추가했다는 점이다. 아니, '왜'의 추구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투키디데스는 34세 나이에 아테네 상류계급 사람이라면 당연한 진로인 정치가의 길이 막혔다.
이후 그가 삶에 대한 집념으로 드러낸 것이 세상 깊이 읽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316 P)
내가 그녀의 전쟁과 역사 이야기가 왜 재미있다고 느꼈는지
왜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의 우여곡절을 읽으면서 인생 공부가 된다고 느꼈는지
다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1권에서는 전쟁에 패배해 삶이 망가져 버린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와,
전쟁에서는 이겨 영웅이 되었지만 '에포로스'의 간계에 걸려 비참하게 갇혀 굶어 죽은
스파르타인 파우사니아스가 그랬다.
2권에서도 페리클레스를 비롯해 여러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선택, 그리고 행동으로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보면서 요즘의 나를 반성하기도 하고 얄궂은 운명 같은 것이
허무해지기도 하고......
다들 코로나 이전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고 있다고,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그래도 여전히 예전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어떻게 되는 건지, 내가 하는 공부가 너무나 불확실해서 불안하기만 한 요즘.
'그리스인 이야기 2'권에서도 전염병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지금의 코로나처럼 아니 어쩌면 더 무서웠을지도 모를 당시의 역병의 정체는
장티푸스였을 거라고 한다.
지금 찾아보니 장티푸스는 '항생제 덕분에 지금은 치사율이 아주 낮고
장티푸스균은 사람만을 병원소로 하므로
사람사이의 전파 경로만 차단하면 발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장티푸스의 예방을 위해서는 손씻기 등의 개인 위생이 가장 중요하며
유행 지역을 여행할 경우에는 비위생적인 음식과 음료수를 삼가도록 합니다.'라고 나온다.
코로나도 역사의 한 부분이 될 날이 분명 올 텐데. 오겠지?
'그리스인 이야기 2'는 이렇게나 오래 전 일인데
지금의 내 상황과 겹쳐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스가 곧 아테네라고 말할 정도였던 도시국가 아테네는 기원전 404년, 멸망은 면했지만 쇠퇴가 확실해졌다.
아테네의 융성을 이끌었던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정치 체제.
둘째, 아테네 해군.
셋째, 아테네·피레우스 일체화.
넷째, 델로스 동맹.
아테네는 이 모든 것을 불과 25년 만에 잃었다. 패권 국가는 되지 못했다.
역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옳았다. 인간에게 최대 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아테네인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패했다. 다른 말로 하면 아테네인은 자멸했다. (601 P)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류는 전쟁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장기전이 되고 게다가 패색이 짙어진 전쟁을 싫어할 뿐이다.
따라서 명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단번에 승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전투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것이 육지든 바다든 상관없었다. 마라톤의 밀티아데스, 살라미스의 테미스토클레스,
플라타이아이의 파우사니아스 그리고 그 후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모두 그러했다.
이 성향은 민족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로마의 스피키오, 카이사르 또한 그러했다.
패색이 짙어진 상태에서 장기전으로 가는 것만큼 자국민의 지지를 상실하는 일은 없다. (554 P)
이제 남은 사람은 니키아스 뿐이었다. 이런 경우 인간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 할 상황이 되면 이제부터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사람,
둘째, 책임을 분담하는 사람이 없어진 상황에 불안을 느끼며 혼자 일을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454 P)
민주정치의 리더 : 민중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
우중정치의 리더 : 민중이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선동하는 데 뛰어난 사람
전자가 '유도하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선동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긍정적인 면에 빛을 비추며 인도해가는
유형이지만, 후자는 부정적인 면을 폭로해 불안을 선동하는 유형의 지도자다.
따라서 선동자는 반드시 정치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이라면 시위를 이끄는 지도자나 언론,웹(Web)
도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휼륭한 '데마고그(선동자)'가 될 수 있다. (272 P)
그렇다면 불안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역병과 적군의 침공으로 불이 붙은 그들의 불안은 사람이라면
많건 적건 늘 지니고 있는 불안과 연결되고 말았다. 이것의 정체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내일이 되면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이 불안이 근거가 희박하고 건설적이지도 않다고 단정짓기는 쉽다.
그러나 불경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불경기가 되고 만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 사람의 마음을 거꾸로 되돌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페리클레스의 존재가 빛났던 것은 언어를 활용한 유도로, 인간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다. 한편 아테네 최초의 데마고그로 알려진
클레온은 그 불안 때문에 생긴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를 선동해내는 데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많은 사람의 분노를 선동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 스스로 누구보다 미칠 듯이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페리클래스는 떠났고 남은 사람은 클레온이었다. (276 P)
그런 아테네에 무시무시한 역병이 덮쳤다. 그리스인은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를 배출한
민족이었다. 의료수준은 높았을 것이고 의사도 많았다. 하지만 의사들은 난민수용소에서 발생하여
부유한 사람들 집까지 기세 좋게 퍼져나간 전염병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보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멀리 에티오피아에서 이집트를 거쳐 피레우스 항구로 상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소문에 지나지 않았다. (244 P)
당시 28세였던 '펠로폰네소스전쟁사'의 저자 투키디데스는 훌륭한 현장 증인이다. 이 유레를 찾을 수 없는
현장 증인이 쓴 '펠로폰네소스전쟁사' 가운데 몇 쪽은 실록으로서 걸작으로 꼽히는데, 이 묘사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1,800년 후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밖에 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참고로 그리스인 시대 다음의
로마인 시대에 역병에 관한 훌륭한 실록이 없는 것은 열심히 하수도를 건설한 덕분에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투키디데스가 남긴 증상을 기초로 현대 연구자들은 이해에 아테네를
덮친 전염병의 정체가 보카치오 시대의 흑사병이 아니라 장티푸스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아테네 시내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걸렸다는 것은 사실이다.
투키디데스도 걸렸다가 완치되었다. 젊고 체력이 좋은 사람은 완쾌되었지만 어린아이와 체력이
약한 사람은 죽었다. 이 전염병이 그때까지 유지되던 아테네인의 기개를 완전히 붕괴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모든 신전은 신의 가호를 비는 목소리로 가득찼고 늘 맑았던 아테네 하늘에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 가축을
태우는 연기가 여러 갈래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245 P)
일국 평화주의로 일관해온 스파르타는 경제력 향상을 '꾀하지 않는'것을 신조로 삼았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꾀하지 않는'것으로 연결되기 쉽다. 그리고 '꾀하지 않는'생활 방식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된다. 육군 전력에서 압도적인 강력함을 자랑하던 스파르타였지만
외교 면에서 코린토스에 끌려 다니는 일이 많았던 것은 '꾀하지 않는'사이에 능력 자체가 약화된
좋은 사례다. (228 P)
페리클레스가 말하는 '정신력'은 "1억 개의 불덩이가 되어 적을 향해 돌진하자"와 같은 부류의 정신력이
아니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기 조절 능력을 말한다. "우리 아테네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적의 뛰어난 전략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늘 잠재되어 있는 자기 상실입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정신력'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산을 약탈당하더라도, 자산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산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참고 견디는 힘을 가리킨다 (230 P)
정치 언어와 철학 언어는 다르다. 페리클레스는 정치 언어의 고수였고 그보다 25세 연하였던
소크라테스는 훗날 페리클레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철학 언어의 고수가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목표는 달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타자를 유도해가는 화법을 구사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149 P)
페리클레스는 자기 연설을 들은 사람이라면 마지막에 늘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구나, 하고 감동하면서 정책 설명을 듣고, 그 가부를 결정할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들으며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듣고 나면 적극적이고 밝은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페리클레스의 논법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유혹해서 이끈다'는 의미를 가진 '유도'만큼 적절한 말도
없을 것이다. 민주정치 국가 시민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던 아테네인을 강제로 끌고 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였다. 따라서 이치를 통해 '유혹해서 이끌고' 가는 방법이 가장 유효했는데, 그럼에도
그 교묘함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페리클레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49 P)
키몬의 직설적인 성격이 충돌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정직한 사람'과 '외교에 능한 사람'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인은 완고할 정도로 보수적이어서, 자기네 국가체제를 규정한 리쿠르고스 헌법을 고수할 때도
'왜 호헌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조건 호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유연성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 누군가 충고하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떤지 관계를 따지지도
않고 그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거부하고 보는 것이 스파르타인이었다.
키몬은 정직하게 행동하면 할수록 스파르타에서 설 곳이 좁아졌을 것이다. (31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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