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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by 타마타마북 2020. 7. 31.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서양의 건축은 절대적 개념과 수학적 분석에 의해서

동양의 건축은 비움과 관계에 의해서라는,

동 서양의 건축의 차이를 만들어낸 범인을 추리하는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도

그 추리의 도구로 사용되고

다양한 건축과 건축가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보면서

건축 문외한도 쉽게

작가의 이론에 동화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인정을 할 수 있나 없나의 문제는 차치하고.

 

코로나는 역시 요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화두인 듯.

이 책에서도 후반 부분에서는

앞으로 가속화될 디지털 사회로 치닫는 비대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과

인간다움을,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가진

인간다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정말 우리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

과도기에 살고 있는 걸까......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한자 '공'(空)과 사이라는 뜻의 한자 '간'(間)이 합성된 단어다.

'사이'라는 것은 두 개의 개체가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간'은 둘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공간을 뜻하는 단어 하나만 살펴봐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4 P

 

 

서로 다른 지리적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동서양 문화 특징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서양은 기하학적인 공간 구조, 동양은 관계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다고 살펴보았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우리나라

통일신라 시대의 '석굴암'(751~771)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석굴암'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하학적인 건축물이다.

157  P

 

 

통일신라 시대에 이 같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가능했던 것은 통일 신라의 수도가

바닷가에 가깝게 위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경주는 한반도 남단의 바닷가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위치상으로 대륙에서 오는 문명과 해양에서 전파되어서 오는 문명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바다를 통해서는 기하학적인 서양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여서

'석굴암'을 디자인했고,

음양의 병치를 보여주는 배치 개념은 중국 대륙을 통해서 들어온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디자인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석굴암'이후 불교 사찰에 기하학적인 공간의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통일 신라 이후에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의 수도가 개성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륙과 해양의 접점에 있었던 통일 신라의 경주와 달리

개성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륙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중심축이 해양과 멀어지면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가

융합을 이룰 수 있는 모멘텀을 잃게 되었다.

물론 고고학적 근거가 없는 건축가의 상상일 뿐이다.

161,162  P

 

 

1984년은 인류 역사에 기념비적인 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1984년이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1984년은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한 해다.

1984년이 되는 해 밤 12시에 백남준의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1985년에 매킨토시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출시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 시스템도 점점 개선되어서

1990년대에 들어서는 매킨토시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까지 발전했다.

나도 1989년,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PC를 구매하고

건축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오토캐드'소프트웨어와

색칠을 할 수 있는 '닥터할로'라는 프로그램을 깔고 건축 설계에

처음 사용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너무 느리고 소프트웨어는 원시적이어서 손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을 따라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에 그린 그림을 출력하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컴퓨터의 잠재력은 알았지만

실제 디자인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랐다.

342 P

 

 

문화인류학적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와 유사하게 같은 컴퓨터 언어,

즉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과

결과물들은 서로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356  P

 

 

기술로 인한 획일화를 피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은 사람의 신체에 집중하기도 하고

일부는 재료에 집중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몸과 재료는 현실 세계에서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변화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짝짓기 본능이나

관음증 같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본능은 수십만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서 진화해 온 것들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건축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은 '중력'이라는 법칙이다.

많은 건축이 다양한 디자인을 하지만 태초부터 바뀌지 않는

건축의 본질은 중력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 건축에서는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태의 건축물이 디자인되기도 한다.

357  P

 

 

역사가 말해 주듯이 기술혁명만으로는 획일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과의 융합 없이는 진화에서 뒤처지겠지만 동시에 디지털과의 융합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 고전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누구보다도 디지털화되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 있는

을지로에 가고, 1980년대 리메이크 노래를 듣고,

뉴트로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점점 디지털화되어 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점점 더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는 이유도 있다. 손 글씨 쓰기 연습, 색칠하기 연습, 가구 만들기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 열풍은 지나치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나 자신은 데이터화된다.

나라는 존재는 이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디지털 사진들로 대변된다. '나'라는 존재가 비트로 구성된

데이터화되는 현실은 원자로 구성된 몸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데이터로 대체되어 가는 나를 찾기 위해서

더욱 더 물질로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 문화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382  P

 

 

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공통의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었고, 더 큰 집단이 소수 집단의

경쟁자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386  P

 

 

 

미래시대의 표준어는 지리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컴퓨터와 소통되는 언어가

표준어가 될 것이다. 지난 25년간 인터넷이 영어를 전 세계의

공통 언어로 통합했듯이 음성 언어 역시 인공지능에 맞추어서

표준화가 정립될 것이다. 그런 시대가 되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가상공간과 실제 공간 사이의 경계도 모호해질 것이다.

다가올 시대에는 디지털 기계와 아날로그 인간의 융합이 있는 곳에

새로운 생각이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배웠듯

기술에만 의존하면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디지털과의 융합은 이루어야겠지만 동시에 아날로그적 인간성을

포함시켜야 한다. 실패한다면 우리는 기계적 획일성에 매몰될 것이다.

401  P

 

 

'과연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려면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눈이 필요하다.

앞으로 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403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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