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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타마타마북 2020. 1. 30.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번역 김선형 살림출판사    

                                                          

                                     

 주유소 주인 조니 레인 씨는 잘 알았다. 항상 카야네 가족을 늪지 쓰레기라고 부르는 위인이었지만

    그 정도는 상대할 가치가 있었다. 비바람이 불어도, 조수가 밀려들고 물러나도 얼마든지 좋았다.

    망망한 풀과 하늘과 물의 공간으로 다시 나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혼자라 무서웠지만 이제는 그 기억마저 흥분돼 콧노래를 불렀다. -88P-

 

  게다가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소년의 차분함, 그렇게 찬찬히 말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카야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너무나 확고하면서도 편안한 행동거지였다. 그냥 근처에만 있었는데, 그렇게 가까이 간 것도 아닌데,

     딱딱하게 뭉쳐 있던 카야의 응어리가 한결 느슨해졌다. 엄마와 조디가 떠나고 처음으로 숨 쉴 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 말고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카야에게는 이 보트와 그 소년이 필요했다.  -89P-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야.

   어쩌면 원초적 충동이, 지금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태고의 유전자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스트레스와 공포와 엄연한 위험에 반응해서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나게 내몰았을지도 몰라.  -400P-

 

  "속상하지, 당연해. 하지만 카야, 신의를 지키지 않는 건 남자만이 아니야.

    나도 속고 차이고 여러 번 상처받았어.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우리를 봐. 지금은 이렇게 서로가 있잖아. 내가 아이를 낳고 너도 아이들을 갖게 되면, 그건 또 전혀 다른 인연의 끈이야.

    그렇게 죽 이어지는 거지. 카야, 테이트를 사랑한다면, 다시 한번 모험해봐." -4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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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외로움'과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책이라고 한다.

 

엄마와 언니 오빠들이 다 떠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단둘이 남게 된 카야.

카야가 생존을 위해서 혼자 습지에서 발버둥 치듯, 떠난 가족들도 살기 위한 본능으로 도망치듯 떠났을지도 모른다.

동물만 생존 본능이 있는 건 아니다.

카야의 오빠 조디가,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태고의 유전자가 엄마를 떠나게 내몰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성애와 가족애가, 우리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감정들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과연 모든 인간이 다 그럴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난 비난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카야의 외로움과 고립은 때로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모든 사람이, 폭력을 일삼았던 아빠마저도, 사랑하는 테이트까지 자신을 떠나고 철저하게 혼자가 된 카야는

누군가와 함께하고픈 욕망에 체이스에게 다가가지만 그에게서도 버림을 받는다.

  

하지만 카야는 혼자 꿋꿋하게 살아간다.

습지대의 온갖 동물과 식물에 관해 그림을 그리고 책을 써도 될 정도로 진정한 그들의 친구가 된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외롭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카야도 혼자만의 삶을 열심히 살아나간다.

고립된 삶을 살아 자신과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는 서투른 인간이 돼 버렸지만,

그래도 카야는 적어도 자신의 외부에서 기대하지 않고 자기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장스토리인 동시에 러브스토리,

그리고 미스터리까지 가미돼 있어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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