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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by 타마타마북 2020. 2. 1.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괜찮아요, 상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면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물론 외롭긴 해요.

      하지만 이런 데 익숙해지는 편이 나아요." -135P-

 

   "가끔 다이애나를 생각하면 아주 슬퍼져요.

      하지만 아주머니, 너무 오래 슬픔에 빠져 있기엔 세상이 참 흥미롭지 않나요?" -247P-

 

  "그리고 이제 과거는 망각의 장막으로 덮어 두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저 품위 있게 말 잘했죠, 아주머니?

     제가 원수를 은혜로 갚아 배리 아주머니를 부끄럽게 만든 기분이었어요." -261P-

 

  앤은 이따금씩 놀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30여분 동안 이렇게 온갖 황홀한 탐험을 했다.

     앤이 새로 발견한 것들을 매슈와 마릴라에게 들려주면 두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다고 매슈가 귀찮아한 것은 아니었다. 매슈는 얼굴 가득 즐거운 미소를 띠고 앤의 이야기에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마릴라는 이 수다를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너무 빠져들었다 싶으면 입 좀 다물라고 얼른 한소리 하며 앤의 입을 막아버렸다.  -123P-

 

 보랏빛 골짜기를 지날 때면 수업에서 길......누가 나를 앞서든 말든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다니까.

    그런데 학교만 도착하면 전혀 달라져서 평소처럼 신경이 쓰여. 내 안에는 앤이 여러 명 있나 봐.

    가끔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고뭉치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만약 내 안에 내가 한 명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편했을 거야. 재미는 절반도 안 됐겠지만."  -287P-

 

  아주머니, 내일을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나요?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날들이잖아요.   - 310P-

 

 생기발랄한 열정과 솔직한 감정, 애교 어린 태도와 다정한 눈과 입술. 예쁘고 소중한 생각들은

    보석처럼 마음속에 담아두는 게 더 좋아요. 그런 생각들이 비웃음을 당하거나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게 싫거든요.

    그리고 왠지 거창한 표현도 더는 쓰고 싶지 않아요. 배우고 생각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거창한 말을 할 시간이 없나 봐요.

    게다가 스테이시 선생님도 짧은 말이 훨씬 더 강렬하고 효과적이라고 하셨어요. -4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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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은 수다쟁이다.

나처럼 별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겐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말이 많다.

 

난 말이 많은 사람이 부담스럽다.

좋으냐 싫으냐로 선택하라고 하면 싫어한다고 말할 것이다.

뭔가 마음이 말로 포장되는 것도 싫고,

진심은 쉽게 말로 튀어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 내가 그러니까.

왠지 쉴 틈 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사기꾼 같기도 해서 부담스럽다.

 

근데 사람 맘이라는 게 말을 안 하면 알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고마워해도, 죽을 만큼 심각한 고민을 껴안고 있다 해도,

말을 하지 않으면 나 이외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솥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고 해도

그저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일이 있나 보다로 추측할 뿐,

말을 하지 않으면 가족 중 누군가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어떤 상황인 건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눈빛만 봐도 알아요'는 그냥 짐작이고 추측일 뿐이지 팩트는 될 수 없다.

 

그렇다고 과묵하기 짝이 없던 내가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진 못한다.

울 엄마만 늘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울 엄마가 빨강머리 앤을 그렇게 좋아했나 보다.

 

언젠가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이 TV에서 방송되던 때의 일이다.

울 엄마, 난 바느질하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앤의 수다에 완전 집중하고 있었다.

재잘재잘하는 앤의 수다에 웃고 우는 울 엄마 모습에,

난 딸이 너무 말이 없어서 그런 가보다

잠시 반성했던 적이 있었다.

 

앤은 온갖 상상력과 느낌, 자신의 경험을 끝없이 재잘거리는 소녀이다.

자신이 겪고, 상상하는 모든 일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그것도 감정을 듬뿍 담아서 아주 생생하게.

수다쟁이 앤은 사랑스럽다.

그리고 앤의 수다는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고 눈물짓게 만든다.

누구나 다 한 번쯤 고민하고 부딪혔을 인생의 길모퉁이를

앤은 온 힘을 다해 맞서고 질주하며 즐긴다.

 

금방 비관적이 돼곤 하는 내게 앤은 뛰어넘을 수 없는, 통통 튀는 태양 같다.

아직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내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너무 오래 슬픔에 빠져 있기엔 세상이 너무 흥미롭다는 수다쟁이 앤에게서

과묵한 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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