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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by 타마타마북 2020. 2. 10.

                                                                                   마왕

                                                                                                                             이사카 코타로

                                                                                                                       김소영 옮김   웅진씽크빅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썼다고 이사카 코타로는 『마왕』에 관해 얘기한다.

 

『마왕』은 30보 안에서만 상대방의 입에서 자신이 의도한 말이 나오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형 안도와

10분의 1, 그 확률 안에서만은 늘 이길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동생 준야의 이야기다. 

 

형제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단둘이 서로 의지하며 컸다.

지금은 동생 준야가 사귀는 시오리랑 셋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런 어느 날, 안도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차츰 깨닫게 됨과 동시에

카리스마 정치가 이누카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걸 느낌으로써 소설은 시작된다.

 

형제는 자신들이 가진 애매모호한 크기의 초능력으로 세상에 맞서 싸운다.

분명하고 순수한 자신들의 뚜렷한 정의감으로

개인의 생각이 없는 단체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는 악당이 없는 듯하다.

물론 킬러도 나오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정치가도 나온다.

외적인 부분만 보면 그들은 엄연한 악당이다.

하지만 소설 속 그들도 고민하고 방황하는 인간들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완전한 악당도 완전한 영웅도 없는 듯하다.

 

그런 그들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그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선다.

비록 약한 존재이지만 꿋꿋한 그들의 정의감에 난 늘 감동한다.

 

『마왕』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안도가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로서 이탈리아를 세계대전 속으로 끌어들여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인물 무솔리니와 그의 여인 클라라 얘기를 하면서

무솔리니가 처형당할 때 클라라도 함께 처형당했는데 그때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어졌고

무서운 군중 속에서 뒤집어진 클라라의 치마를 바로잡은 사람이 있었다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단체의 힘은 위대하지만 때로는 공포심도 유발한다는 건 다들 느낀 적이 있지 않을까.

 

일본인들은 개인주의지만 단체 행동이 뛰어나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일본인이 월드컵 당시 온통 빨간 옷을 입고 큰 화면 앞에 모여 응원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한국인들 무섭다고 말하는 걸 난 들은 적이 있다.

  

단체 속에서 자기 생각을 관철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몰려가는 단체 속에서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순수한 지성과 용기.

사회를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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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국민은......' 나는 어느 책엔가 쓰여 있던 문장을 기억해냈다.

   파시즘에 대해 설명한 책이었는데, '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는 일은 끝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쓰여 있었다.

   바로 이 순간 그 말이 머리를 스친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역시 우리는 길들여져 있는 거로구나"하며 공감했던 것이다.      -34P-

 

 "전쟁 중에는 있지, 섹스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귀지는 파기 힘들 거야 아마.

   그러니까 남편이 귀를 내 쪽으로 내놓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거야.

   하지만 숨은 쉬고 있으니까 몸이 천천히 움직이잖아."

 

    "호흡 때문에?"

 

   "응, 맞아. 그 호흡을 느끼면서 한가롭게 지내는 시간이 난 참 좋아.

   이렇게 귀지를 팔 수 있는 시간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   -300P-

 

 "여기서 일곱 시간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니 거짓말 같지?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나는 일곱 시간 동안 새를 기다리면서 호흡만 하고 있을 뿐이야."

   이것으로 충분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309P-

 

  "커다란 홍수는 막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은 잊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두 사람으로 보였습니다요."

                                               -343P-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나간다면?"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           -349-

 

  "싸울 생각이라면, 나도 함께할 거니까."

     "싸우다니 무슨 소리야?"

     "다시 말해서." 나는 그 부분에서 단어를 고른다.

    "클라라의 치마를 바로잡을 때는 나도 함께하자는 말이야."

    준야는 한 번 눈을 내리깔았다가 각오를 했는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입가에 어렴풋이 미소를 띄우고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천천히 하면 돼"하고 말했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경마를 해서 돈을 불려나가는 거야.

    기다리는 건 힘들지 않아.

   일곱 시간이나 기다려도 한 마리의 매도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타날 때면 아름답지."나는 하늘로 녹아들어간 참매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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