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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겠네

by 타마타마북 2020. 2. 9.

                                                                              그것도 괜찮겠네 

                                                                                                                             오유리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그것도 괜찮겠네』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산문집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2000년 오듀본의 기도로 데뷔한 작가로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가이다.

    나오키 상 후보에도 다섯 번이나 오르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영화화된 작품도 많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늘 조금은 딴세상 같은 원더랜드에서

    약한 자들이 자신의 정의로 굳건히 그리고 조용히 맞서는 느낌, 그런 따스한 강인함이 느껴진달까.

    인물들의 유쾌하고 어찌 보면 심드렁하고 쿨한 대화도, 물론 그의 소설을 읽을 때의 쏠쏠한 재미다.

 

    등단할 때의 담당 편집자가 10주년 되는 해에는, 에세이집 한번 내보는 게 어떨까요? 하는 제안에

    당시에는 10년 뒤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은 않겠지 하고 생각해 그러자고 한 게 계기가 돼 나온 게

    이 산문집이라고 한다.

 

    각각 그다지 길지 않은, 내용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 관해 쓰고 있지만

    그의 소설만큼이나 흥미롭고 재치있는 산문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 사료를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만나는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아버지,

    아버지 얘기만 나온다고 섭섭해 하는 어머니,

    십이지 동물들에 관해 에세이를 의뢰 받았는데 쓸 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얘기,

    그런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디즈니랜드, 동물원에 같이 가 주는 아내,

    지금껏 재밌게 읽은 만화, 동경의 대상인 소설가와 그 소설 얘기,

    이렇게 유명한 작가인데도 소설을 처음 쓸 당시와 등단한 이후에도

    회사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작가로서의 불안했던 얘기,

   

    등단 후 3년 째인가, 온전하게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내에게 회사를 관두면 어떨까 말했더니 아내가 했던 대답이

    이 산문집의 제목 『그것도 괜찮겠네』 였단다.

 

    본인은 산문집에는 영 소질이 없는 듯 작가 후기에서 말하지만

    독자로서는 꽤 재밌는 산문집이었다.

       

    읽는 내내 웃으며 읽다가 빵 터진 글이 있어 아래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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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의 기분

         어린 시절 12띠에 대한 민화를 들었을 때 걱정이 됐던 것은 소였습니다.

       소는 '나는 걸음이 느리니까 빨리 출발해야겠다'면서 다른 동물들보다 일찌감치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골인하려는 찰나, 소의 등에 올라타 있던 쥐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맙니다.

 

         그때 소의 기분은 어땠을까. 어릴 적엔 그 생각에 몹시 속상하고 분했습니다.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을 이용당했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분하고 억울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의외로 "소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어. '12띠에는 들었잖아. 그럼 됐지 뭐' 하고 말았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긴 12띠의 첫번째가 두 번째에 비해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분하게 생각하고 화을 낼 일도 아닐지 모릅니다.

 

         얼마 전 우리 집 꼬마가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가벼운 타박상이겠거니 하면서도 워낙 걱정이 팔자인 저는

       곧장 아이를 정형외과로 데려갔습니다. 기껏 차를 몰고 갔더니 주차장이 만원......

       '이런, 이걸 어쩌나.'조바심이 났습니다.

       기다리다 어찌어찌 주차를 하고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저쪽에서 어떤 남자가 달려왔습니다.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걸 붙잡아 세우고 기다려줬는데 남자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올라타더니,

       같은 층에서 당당히 먼저 내려 앞서서 접수 카운터로 향하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온 걸 모르시오!'라는 말이 턱밑까지 치밀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소였습니다.

       '골인 직전에 선두를 빼앗긴 소는 그 정도의 일은 개의치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그저, 이만하면 됐지 않나' 했던 것이지요.

       '아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다.' 소 덕분에 마음이 풀린 저는, 나중에 12띠에 대한 민화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두를 빼앗긴 소는 "분분히 화를 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소도 화를 냈잖아......'

       저는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곧 '그렇지,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 하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금년 제 목표는 '이만하면 됐지 않나'와 '화를 내야 할 때 화내기'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입니다.

  

                                                                             - 『그것도 괜찮겠네』 中  <소의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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