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
먼저 이산문학을 디아스포라(diaspora) 문학이라고도 하는데 'diaspora'의 뜻부터 살펴보면,
우리 말로는 민족분산 혹은 민족이산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dia'는 ~넘어, 여러 방향으로 'spora'는 씨뿌리다 라는 뜻의 그리스어라고.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에는 diaspora가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명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한다.
서경식 본인 역시 재일조선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이기도 하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총수는 2006년 기준으로 약 600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식민주의로 인한 강제적 이동뿐만 아니라 세계화로 인해 국경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출현한 디아스포라.
이런 디아스포라의 다양성, 타자성, 다문화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문학,
이것이 이산문학이다.
그 중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으로는 재외한인문학과 국내작가가 발표한 다문화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읽은 책은 재일문학으로 불리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들이 발표한 책들이다.
내가 재일조선인에 관해 처음 놀랐던 기억은,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쓰며 일본이름으로 생활해도 일본이라는 국적을 취득해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는 이상
선거권도 없고 경찰과 선생님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때였다.
재일조선인은 한국, 북조선, 일본 이 중에서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당연히 한국인이 되는 우리는 조국, 고국, 모국이 같은 개념이며 그 차이에 관해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조국은 선조의 출신국, 고국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은 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 라고.
재일조선인들은 국적 선택에 따라 조국, 고국, 모국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무국적 상태인 것이다.
역사와 정치 같은 어려운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소수로써의 그들이 살면서 느껴야 하는 정체성의 문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보편적인 사회문제가 된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포함해서 말이다.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고,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 상을 받았다고 한다.
『소년의 눈물』 중 한국어판을 펴내며라는 프롤로그에서 서경식은 말한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결과 나는 일본 땅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민족 차별 정책 때문에 충분한 우리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역사가 나의 빼어난 일본어 표헌을 가능케 해주었고 끝내 이런 상까지 안겨준 것이라 할진대,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디아스포라 기행』은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 2004년 6월부터 2005년 4월까지 11회에 걸쳐 연재한 에세이
「디아스포라 기행」을 가필한 것이라고 한다.
서경식은 한국에서 공부하던 두 형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형들의 구속 석방과 한국 민주화 활동을 펼친
작가이기도 하다. 『디아스포라 기행』과『소년의 눈물』은 그의 그런 가족력과 재일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작가 최실은 1985년생으로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 3세이다.
『지니의 펴즐』로 제59회 군조 신인문학상, 제33회 오다사쿠노스케상, 제67회 예술신인상 등을 수상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재일조선인 3세 지니라는 소녀이다.
지니는 일본 소학교를 거쳐 조선학교 중등부에 진학한다.
지니는 여러 가지 문제로 조선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교실에 걸려 있는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보며 이상하고도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는 지니.
그러다 1998년 북조선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 때문에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등교하던 지니는
경찰이라는 일본인 남성들에게서 '조센진은 더러운 생물'이라는 말과 함께 모욕적인 폭행을 당한다.
한참이 지난 후 지니는 반 친구들 앞에서 초상화를 끌어내린 후 내동댕이친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지니 나름대로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책을 읽고나면 지니가 작가 최실로 보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작가가 경험한 일본 조선학교가 이야기의 토대이기도 하다고 한다.
재일조선인의 문제가 이렇게 책으로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그들의 '한'이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내인 (0) | 2020.03.14 |
---|---|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0) | 2020.03.13 |
사랑 없는 세계 (0) | 2020.02.19 |
야채에 미쳐서 (0) | 2020.02.17 |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0) | 2020.02.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