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 없는 세계

by 타마타마북 2020. 2. 19.

                                                                                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서혜영 옮김     은행나무 펴냄 

 

 

미우라 시온의 전작 『배를 엮다』를 너무 재밌게 읽었었다.

사전 편찬 작업을 하는 출판사의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이번 작품 『사랑 없는 세계』는 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일류 요리사를 꿈꾸는 이의 이야기다.

 

두 작품 속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일에 대한 우직함만으로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는 있다.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데 서툴고 영리한 사교술은 없지만,

이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사람들이다.

묵묵히 끈기 있게 한 가지 일에만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현명해지는 게 아닐까.

 

이야기는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후지무라가 엔푸쿠테이라는 요릿집에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자연스레 요리사를 꿈꾸게 된 후지무라.

후지무라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여러 곳의 음식을 먹고 돌아다니던 중

엔푸쿠테이에서 먹은 음식에 매료돼 우여곡절 끝에 주인 쓰부라야 밑에서 수련을 하게 된다.

 

그러다 엔푸쿠테이에 오는 손님이었던 식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들과 자연스레 알게 되고

후지무라는 그 대학원생 중 한 명인 모토무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사랑 고백을 한다.

 

후지무라의 이야기로 시작이 돼 요리사를 꿈꾸는 사람들 이야기인가 했는데

이야기는 곧 식물학을 연구하는 모토무라의 시점으로 바뀌게 되고 내용도 전개된다.

 

모토무라는 식물이 살아가는 세계를 사랑 없는 세계라 한다.

뇌도 신경도 없는 식물은 사랑도 필요로 하지 않고 빛과 물만을 식량으로 하여 살아가니까.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산다'는 것의 의미가

전혀 다른 식물학의 세계에 흥미를 느껴 애기장대 연구를 시작하게 된 모토무라.

그녀 또한 배를 엮다의 마지메처럼, 한 가지 일, 즉 식물학에만 푹 빠져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간과의 공감 능력은 사뭇 떨어지는 그녀는 후지무라의 사랑 고백에 뭐라고 대답할까.

 

후지무라와 모토무라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마쓰다 교수, 대학원생들, 쓰부라야 주인, 그들의 사람 사는 뭉클한 이야기도 촘촘히 들어있다.

식물학 연구 과정도 아주 자세하게 설명돼 있는데

일본 식물학회에서 식물학 공헌자에게 수여하는 특별상도 받았다고 한다.

 

실패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그리고 한결같이 꾸준한 길을 걷는 사람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고 그들은 내게 말하는 걸까.

소설 끝에서 행복한 기운이 되어 잠드는 후지무라는 분명 그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을 어떻게든 알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열정을 바쳐 연구하는 거다.

     그 열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나요?"   -457P-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구요."       -458P-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0) 2020.03.13
이산문학  (0) 2020.03.12
야채에 미쳐서  (0) 2020.02.17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0) 2020.02.11
마왕  (0) 2020.02.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