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10미터 앞
요네자와 호노부
김선영 옮김 엘릭시르 펴냄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를 알게 된 계기는 『빙과』라는 에니메이션이었다.
『빙과』의 주인공은 오레키라는 고등학생으로 고전부라는 동아리에 소속돼 있었는데,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의 모토였던가.
그런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일상 사건들을 심드렁하게 관심 없는 듯 있다가
친구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예리하게 추리해서 사건을 풀어내는 게 꽤 신선했었다.
오레키 주변의 소소한? 사건들이 고전부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나왔었는데
책도 에니메이션도 꽤나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뒤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소설들이 계속 출판됐었는데
대부분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 내용이었던 듯하다.
일상 추리물, 소시민 시리즈, 뭐 그런 타이틀이 붙는 만큼 내용도 개가 없어진 사건이라든가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이니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들도 왠지 다들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평범하지만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인물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오랜만에 읽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진실의 10미터 앞』은 조금 달랐다고 할까.
『진실의 10미터 앞』은 다치아라이라는 여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6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물론 추리소설이다.
살인사건이나 실종사건이 주 내용이긴 하지만 역시나 사건을 풀어내는 추리는
일상의 소소함에서 실마리를 발견하는 내용이 많다.
그런데 다치아라이라는 인물에 관한 묘사가 왠지 특이했다고나 할까.
언뜻 보기에는 기자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듯 보인다.
똑 부러지고 예리하고 공사구별 확실히 하는 듯한 뭐 그런 느낌.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이 묘사하는 다치아라이가 조금씩 다르다.
누구는 무뚝뚝하지만 진심이 통하는 사람,
헤어질 땐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
반면에 순진하고 정직하고 다정하고 부끄럼을 타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
물론 순진, 정직, 다정 같은 면은 십오 년 전 모습이니
그 세월 동안 이렇게 변했다는 묘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게는 단편 전체를 통해서 보이는 다치아라이가 참으로 다양한 면을 가진 듯했다.
하긴 일관된 성격의 캐릭터보다는 이렇게 다양한 면을 가진 인물이 훨씬 현실적이긴 하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니까 말이다.
본인의 직업을 어떻게 정당화하냐는 질문에 다치아라이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당성을 묻는 질문은 대단히 무겁습니다.
......저는 조사하는 걸 좋아하고, 남보다 잘하기도 합니다.
그걸 먹고사는 수단으로 쓰고 있을 뿐이지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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